"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오해의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하셨다.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듣고 읽기는 하지만, 실상 성경의 진리를 잘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잘 알지 못한 것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뜻도 잘 모르는데 좁은 문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마 7:21) 주여 삼창까지 하면서 주여 주여만 외친다고 천국문이 자동문처럼 저절로 열릴까?
오병이어의 엄청난 기적을 목격하고서도 5,000명쯤 되는 군중들이 다 떠나가버린 기막힌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도 가려느냐?"(요6:67)는 말씀이셨다. 생계형신앙, 기복신앙, 가정평화와 건강축복을 기원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앙의 근본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닌가. 영혼 구원이 빠져버린 신앙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가 되어 시간, 물질, 정성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8)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6)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약속의 자녀에게만 허락된 천국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어머니로 말미암아 영생얻고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 구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어머니께 달려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어머니로 말미암아 하늘 유업을 받는 약속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각종 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나라가 물에 잠겨 가옥과 토지를 잃고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고 해마다 강도가 더해지는 지진으로 인해 언제 삶의 터전을 잃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한 각종 바이러스와 새로운 변종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해 심각한 질병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물부족과 자원의 고갈로 인한 국가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눅 21:10). 사람들의 심리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유 없는 살인, 방화를 저지르고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과 이기심, 성적인 문란으로 인한 사회범죄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가족도 안중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딤후 3:1~3.) 우리의 삶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의 한가운데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지진, 기아, 질병… 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당신은 과연 안전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인류를 향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인(印)'을 맞으라고 증거하고 있다. 계 7:2~3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印)'을 맞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印)'은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약속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印)'은 과연 무엇인가?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바로 ‘하나님의 인(印)’이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라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요 6:53~54). 그리고 유월절에 먹는 떡과 포도주에 당신의 살과 피를 약속하시며 새 언약을 세워주셨다. 눅 22:7, 20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월절(逾越節)은 영어로 'Passover'로 '재앙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구약 출애굽 당시에도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를 멸하는 재앙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출 12:1~13).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재앙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으로 보여주시며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에게 "재앙을 넘겨주겠다"고 동일한 약속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집을 계약할 때나 자동차를 살 때 등 중요한 계약을 할 때는 모든 문서에 도장을 찍는다. '내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약속의 증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印)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시겠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逾越節)을 당신의 인(印)으로 삼으시고 지키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보증하셨다. 그리고 어떠한 재앙 가운데서도 지켜 보호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시 91:1~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군대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려내기 위한 방법으로 '암구호'를 사용한다. 암구호란 아군 사이에 미리 정해놓은 문답식의 비밀단어다. 수하자(암호를 확인하는 사람)가 사용하는 문어(問語)와 상대방에서 사용하는 응답어로 구성되는데 주로 상대편의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울 때 미리 약속한 암호로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날의 암구호가 ‘산’과 ‘바다’일 경우, 수하자가 ‘산’이라고 하면 상대가 ‘바다’라고 대답해야 아군으로 인식한다. 틀릴 경우 적군으로 판별한다. 하나님께서도 자녀를 판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암구호를 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사 52:6)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알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아버지의 이름, 아들의 이름, 성령의 이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로 나누시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주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암구호가 세 개인 것이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 43: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행 4:11) 성부시대 ‘여호와’라는 암구호를 알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욜 2:32), 성자시대 ‘예수’라는 암구호를 알았던 제자들이 구원을 받았던 역사(롬 10:9~13)는, 성령시대 역시 ‘새 이름’이라는 암구호를 알아야만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17) 새 이름,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판별하는 새로운 암구호다.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성령의 이름. 하나님께서 '나의 새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때 당신은 무엇이라 응답하겠는가.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요한계시록13:4~6)
용은 요한계시록 12:9을 보시면 마귀(사단)임을 알수 있습니다. 즉, 마귀가 하나님에 대해서 대적하고 훼방하려 할 때 가장 귀중한 부분을 방해하지 않겠습니까? 짐승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는 예언은 그 만큼 그 이름이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의 예언을 따라 오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증거할 때마다 사단의 영에 미혹된 자들은 초림 때나 지금이나 항상 "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라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의 성호를 훼방하려 합니다.
오직하나님의 이름만이 우리에게 하늘 영적 세계에서 저질렀던 모든 죄사함을 얻게 하고, 그 이름에 의지해서 구원의 길로 나오게 하며, 그 이름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새이름은 바로 안상홍님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 66권의 예언을 모두 이루신 재림그리스도이시며 인류를 구원하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새이름 안상홍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50년 이후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의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히려 주춤하거나 후퇴했다. 지난 60년간 급성장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OECD 34개국 중 32위다. 거의 꼴찌나 다름없다.
더 많은 것을 가졌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국내 한 일간지에서 다룬 ‘행복의 조건 설문 2’라는 제하의 기사는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국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누구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 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1순위가 ‘가족’이었다는 것이다(친구 14.6%, 혼자 있을 때 12.6%, 항상 행복하다 6.9%,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4.7%, 항상 행복하지 않다 3.8%, 직장에서 일할 때 1.7%). 다시 말해 행복의 원천은 물질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편하고 가장 아끼는 ‘가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다.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어머니’가 계신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최고조의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편부 가정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는 가정이 더 안정되고 완전해 보이고 더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혼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계 21:1~4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 영혼이 장차 돌아갈 천국은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행복만이 가득한 곳이다. 이렇듯 완전한 나라에 어머니 하나님이 부재한 상태라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어머니’를 두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은가. 그리고 왜 굳이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는가.
아무리 곱씹어봐도 어머니 하나님이 부재한 천국은 불완전해 보인다. 완전한 행복의 원천은 가족 중에서도 단연 ‘어머니’다.
모든 생명체가 모체를 통해 육적 생명을 얻듯,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반드시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을 온전히 마음 가운데 영접하고 믿는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신앙생활에 열심을 낸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을 얻지 못할 헛된 믿음일 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 진정한 행복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 이유는 성경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얼마 전 한 기독교 잡지에서 신학대 교수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겠다고 쓴 글을 봤다. 글쓴이는 성경에 ‘어린양의 아내’, ‘신부’, ‘새 예루살렘’은 어머니 하나님이 아닌 교회(성도)라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모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그러니 이런 비성경적인 주장을 펼쳤으리라. 글쓴이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어린양의 아내는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계 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천국 혼인 잔치에 대한 비유다. 혼인 잔치에는 신랑인 어린양과 신부인 어린양의 아내 그리고 하객인 청함을 입은 자들이 등장한다. 신랑인 어린양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아버지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아내와 청함은 입은 자들은 누굴까?
‘청함’을 입은 손님들이라고 했으므로 당연히 신랑과 신부는 아니다. 신부가 성도라면 ‘청함을 입은 자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들이 바로 영생의 축복을 받을 성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아내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 곧 어머니 하나님이다.
2. 신부는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어불성설이다.
신부가 어머니 하나님이 아닌 성도라고 한다면 성도가 생명수(영생)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생명수를 받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성경에서 생명수를 주시는 분은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뿐이다. 성부시대에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시대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생명수를 주셨다. 그리고 성령시대인 오늘날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시기로 예언되어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셨고(계 21:6), 이어지는 22장에서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셨다. 성령과 신부는 하나님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란 말이다.
3.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는 말씀처럼 신부로 비유된 것뿐이지 신부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더 읽어보자. 같은 장 9절을 보면 요한이 신부 같다고 추측한 분이 누구신지 천사가 정확하게 알려준다. 신부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비유가 아니다. 증거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자.
계 21:9~10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사도 바울은 요한이 본 하늘 예루살렘이 바로 우리 어머니라고 증거했다.
갈 4:26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기서 ‘우리’는 바로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로부터 생명수를 받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들에게는 누가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는가. 어머니 하나님이다. 이처럼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분명,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증거한다. 그리고 그 어머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사람이 되어 오셨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하나님은 초월자라고 찬양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말도 믿어야 한다. 전지전능한 분이 아닌가. 글쓴이는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가 하나님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제한한다고 비난했다. 대단히 오해했다.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는 하나님을 인간적인 모습에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든 영이든 어떤 모습으로도 계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
필자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닌 신일 뿐’이므로 영으로만 존재해야 하고 육체로는 계실 수 없다는 글쓴이의 주장을 보고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이게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제한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초월자라고 찬양하면서도 ‘사람으로는 올 수없다’는 모순된 거짓말에 속고 있다. 절대 속지 말자.
5분마다 1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되고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최근 통계다. 이는 매년 10만 5000명의 기독교인이 종교분쟁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참사는 기독교인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제인권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이슬람교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매년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띌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으로 전 세계가 피멍이 들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종교 증오성 범죄. 무엇이 이들의 증오심을 키우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것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의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타 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증오심을 심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에 따른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무슬림의 순진함’이란 영화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슬람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유혈 충돌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 영화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으로, 미국인 나쿨라 바슬리에 의해 제작됐다.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은 이 영화가 종교적 증오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수입과 배포를 금지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로 인한 인명피해다. 해당 영화가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배포된 만큼 피해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영화를 본 이슬람교인들이 분노가 무력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것이다. 수단에 있는 영국과 독일 대사관이 습격을 당했으며, 리비아에서도 미국 영사관이 습격 당해 대사관이 피살됐다. 레바논, 나이지리아, 모로코, 이집트, 이란, 쿠웨이트 등에서도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충돌,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던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이,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전 세계를 하나로 묶은 인터넷 문명이,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분열을 맞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쉽게 습득하는 이로움도 있지만 인터넷을 악용하여 사실무근한 내용과 악성비방글을 올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해로움 또한 많은 게 현실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거도 없는 내용으로 비방과 비판하는 인터넷문화들, 살인의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가장 큰 비밀은 암행시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사람되어 이땅에 오셨듯 마지막 이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 사람되어 두번째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이 모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는 성령과 신부이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때에 암행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만 알고 영접하면 큰 복 받은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 계신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로 오세요!!!
새책 <오라, 성령과 신부에게>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의 설교집이다. 왜 하나님은 '우리'일까. 인류를 오라고 부르시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경상 생명수를 주는 존재는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일까.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원전에서 '하나님'이 2500여 회나 복수형 명사 '엘로힘(하나님들)'으로 기록된 이유는 뭘까. 김주철 목사는 이런 질문에 '성령'과 '신부'는 창세기에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역설한다. 그의 다섯 번째 설교집인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 안에 영생, 천국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으니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먼저 발견한 자들이 이 위대한 발견을 온 세계 구원을 위해 알리고 전하자고 촉구한다. 서문에는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성령과 신부,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의 가르침을 일부라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33편의 설교에는 성령과 신부가 전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차곡차곡 담겼다. 이 책은 '성경 첫 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장 26절).성경 마지막 장에서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 "오라,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란 내용을 강조한다. 전반부는 믿음으로 변화되어 가는 개인과 세계를, 중반부는 하늘 소망 속에 더욱 진실하고 풍성해지는 삶을, 후반부는 서로 배려하고 섬겨주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가는 '천국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발견은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는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는 성경의 예언대로 성령과 신부이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인류에게 발견된 위대하신 성령(안상홍님)과 신부(어머니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선한 가르침과 숭고하신 뜻을 순종하여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가르침을 알리고자 다섯번째 설교집 ‘오라, 성령과 신부에게’(멜기세덱출판사刊)를 펴냈다.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경상 생명수를 주는 존재는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일까.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원전에서 ‘하나님’이 2천500여회나 복수형 명사 ‘엘로힘(하나님들)’으로 기록된 이유는 뭘까. 이런 질문에 김주철 목사는 과감하게 대답한다.
‘성경’과 ‘신부’는 창세기에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말이다.
저자의 33편의 설교에는 성령과 신부가 전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전반부는 믿음으로 변화되어 가는 개인과 세계를, 중반부는 하늘 소망 속에 더욱 진실하고 풍성해지는 삶을, 후반부는 서로 배려하고 섬겨주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가는 ‘천국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다. 성경 구절 하나 하나 충실히 엮어 놓은 설교를 따라 읽다보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도 있을 듯 하다.
특히 김주철 목사는 하나님 안에 영생, 천국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으니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먼저 발견한 자들이 이 위대한 발견을 온 세계 구원을 위해 알리고 전하고자 촉구한다.
위험한 사상-오직 여호와! 오직 예수! 【성령시대 구원자-안상홍님과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강성 회교국가에서는 지금도 알라와 마호메트, 코란 등을 훼손하거나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회교 열성 신도들 손에 의해 살해당할 수 있다. 고의든 실수든 누구든지 이슬람교의 국법에 따라 신성모독죄를 범하면 체포되어 사형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도 그런 종교적 살해사건을 크게 문제삼거나 개입하여 조사하지도 않는다.
2000년 전 유대교에서도 누구든지 신성모독죄에 걸리면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하신 바와 같이 성부시대에는 여호와라는 이름 외에는 그 누구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될 수 없었다. 유일한 구원자는 오직 신령하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기에 하늘에 계셔야 할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구원자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다 아시면서도 왜 오해받을 발언과 무지한 백성들의 위험스런 공격을 감수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 10:30~33)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성육신을 인정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모함하고 핍박하면서 십자가에 처형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서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떠한 신앙적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1~12) 구원자 여호와라는 이름에서 구원자 예수라는 이름으로 바뀐 지 2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라는 이름에서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바뀐 지 벌써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새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늘 구름만 쳐다보며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2000년 전 유대나라의 니고데모가 밤에 남의 이목을 피해서 예수님을 찾아뵙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꼭 하나님의교회를 찾아오기 바란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위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모두가 이름 때문에 빚어진 사건임을 알 수 있으리라. 회교의 알라와 마호메트, 성부시대 유대교의 여호와, 성자시대 기독교의 예수님, 성령시대 성령의 이름 곧 새 이름 안상홍님 등 과거 유대인들처럼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막말을 하고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명심하는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을 알기 위해 성경에서 확인하고 배우고자 힘쓸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38~39)
이는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이 한 말인데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상당히 신중한 발언을 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다수의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이단으로 매도당하고 있던 신흥종교 단체를 이러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인간적인 존경심을 갖는다. 사도 바울도 한때 가말리엘 교법사의 문하생으로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다가 회개하고 기독교로 개종했던 인물이 아닌가?
사상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유혈혁명이나 순교, 전쟁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사상이 아니던가? 공산주의 사상이나 유교사상, 불교사상 또는 민주주의사상, 자본주의사상은 다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기에 완벽하거나 영원할 수 없고 모순도 부작용도 많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건설되었다가 사도시대 말기 후 종교암흑세기 동안에 악한 자들에 의해서 완전히 훼파된 것을 원상복구 재건하여 다시 전 세계적으로 경영되고 있는 시온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존자가 친히 육체로 재림하셔서 세우신 시온을 누가 감히 또 무너뜨릴 수가 있단 말인가?(시 102:16, 시 87:5)
시온은 절기 지키는 곳이다(사 33:20). 절기 지키는 곳은 오직 하나님의 교회뿐이다.하나님의 교회에는 새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오직 회개하고 성령과 신부에게 돌아오는 길만이 살 길이다. 아직도 오직 여호와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오직 예수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오직 누구만을 고집하던 사람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목격했다면 이제는 성경을 제대로 살펴보고 성령과 신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천국에 갈 것이라 했다.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일요일이면 “주여! 주여!”를 부르짖던 ‘우리 목사님’은 천국행 티켓이라도 거머쥔 양 성도들에게 자신만만히 천국을 외쳤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우리 목사님’이 지옥에 있다. 그리고 더 슬픈 건 그 목사를 믿은 당신도 지옥에 있다.
결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부인하고 싶다면 다음 성경 구절을 자세히 읽어 보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다. 목사, 장로, 전도사 노릇하며 성도들에게 ‘천국’을 외쳤다. 또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다. 귀신까지 떨게 하는 기적을 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적에 놀랐다. “우리 목사님! 정말 대단하다. 귀신을 대적하는 권능을 행한다!”라며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일요일에 교회로 이끌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 천국에 간다고 큰소리치며 교인들을 이끌었던 ‘우리 목사님’, 부흥회를 열고 기적을 일으켰던 ‘우리 목사님’을 하나님께서는 “모른다”고 하신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여태 목사님만을 바라보며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하면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그 결과가 지옥이다. 왜 그럴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목사님’을 ‘모른다’며 '떠나가라' 하시는 걸까? 그 이유는 ‘불법’이다. 많은 기적보다, 권능보다, 선지자 노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 법을 지키는 자가 천국에 간다. 하나님처럼 떠받들었던 목사가 천국에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목사님’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더 위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우주는 한자로 풀이하면 집 우(宇)와 집 주(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공간, 시간을 포괄하는 거대한 집이, 바로 우주인 것이다. 이 우주 안에서 우리는 또다시 작은 단위의 수많은 집 곧 가정을 구성해 살아가고 있다.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가정 즉 아버지와 어머니, 그 자녀로 이뤄지지 않은 생명체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가정이라는 단위 속에 두신 것일까.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우주 만물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그 뜻은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인해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없는 우리들이, 당신의 신성을 깨닫기를 바라셨다. 만물의 모든 생명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어머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어머니를 깨닫길 원하고 원하셨기 때문에 온 우주 만물을 통해 어머니를 증거한 것이 아니겠는가. 거대한 집 우주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자녀를 부르신다. “오너라, 와서 생명수를 마시고 사망도 고통도 없는 우리 집 천국 본향으로 돌아가자!(계 22:17, 계 21:1~7)”
하늘의 죄로 인해 죽음의 땅으로 내려오게 된 우리를 찾아 하나님이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까지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영혼이 돌아갈 곳은 바로 하늘 본향입니다.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그리운 하늘 본향으로 돌아갑시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비밀 / 하늘 예루살렘(어머니하나님)에서 이루어지는 구원《하나님의교회/안증회/김주철목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두 번째 임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함입니다.(히9:28) 두 번째 오셔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요한계시록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생명나무에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요, 거룩한 성에 참예할 수 있는 특권을 제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거룩한 성이 어디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21:2~4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9~12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을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처소가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천국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루살렘 성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루살렘이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52:1~3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보좌에 앉게 될 때에 죄와 사망의 사슬에 매여 있던 시온의 자녀들이 풀림을 받고 속량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가 예루살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21:23~27 그 성은 해나 달이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오직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성경은 누구라도 예루살렘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의 자격을 얻지 못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참예하는 특권과 자격을 가진 자들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게 된 것은 예루살렘이 다름 아닌 지성소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21:14~16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열왕기상6:14~20 솔로몬이 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백향목 널판으로 전의 안벽 곧 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전 마루를 놓고 또 전 뒤편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장이 사십 규빗이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전 안에 내소를 예비하였는데 그 내소의 속이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단에도 입혔더라.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곳으로, 그 안에는 생명과를 의미하는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 지성소의 장과 광과 고를 같게 만들었는데 이는 지성소의 실체가 후에 등장할 하늘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참예한다는 것은 영생에 참예한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우리가 바라고 염원하는 구원의 길을 예루살렘 안에 고스란히 담아 두셨습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우리 영의 어머니입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이하 CRPS)이라는 희귀병이 있다.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매우 드물지만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신경병성 통증을 말한다. 즉 신체부위의 손상이 해결되거나 사라졌는데도 해당 부위가 화끈거리거나 아리는 듯한 양상의 극심한 통증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분류상 작열통에 해당된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순위를 보면 3위가 출산의 고통이고, 2위는 사지절단의 고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몸이 불에 탈 때 느끼는 작열통이다. CRPS 환자들은 최악의 고통인 작열통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하니 얼마나 삶 자체가 고통스럽겠는가. 실제로 미국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협회에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CRPS 환자의 47%가 자살을 생각해 보았고 15%가 자살 충동을 행동으로 옮겨봤다고 한다. 한국 역시 대한통증학회의 조사 결과, CRPS를 포함한 만성통증환자의 44.2%가 우울증을 호소했으며 35%가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을 느끼며 영원히 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지옥 불못에 들어갈 사람들이다. 지옥은 몸이 불에 타는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며 사는 곳이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성경은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마가복음 9장 43~49절)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자신의 손과 발로 인해 범죄하면 그것을 찍어버리라고 했겠는가. 간혹 ‘지옥 한번 가보지. 지금 사는 것도 지옥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옥의 고통보다 덜하다는 사지절단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참을 수 있다는 것일까.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이다. 영원 세세토록 고통이 지속되는 곳이 지옥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그곳만큼은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래서 허락해주신 것이 죄를 사해주는 새 언약 진리(패스티브닷컴 ‘새 언약과 그리스도의 희생’ 참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장 30~32절)
하나님의교회(안증회/어머니하나님/총회장김주철목사)는 하늘의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하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 사람되어 이 땅에 두번째 임하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어머니하나님/총회장김주철목사)뿐입니다. 2천년 전 초대교회에서 지킨 새언약 진리로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교회(안증회/어머니하나님/총회장김주철목사)에서 느껴보세요.*^0^*
엄마 ! 어머니! 어머님! 이 세상에는 비록 남의 일이건만 남의 일 같지않고 왠지 사연을 듣다보면 가슴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돌면서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더러 있다. 그 중에서도 기막힌 사연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무심한 세월 속에 부모형제도 못알아보고 삶에 지쳐갈 때에 다시 극적으로 상봉하는 이산가족형 고아도 있고 철부지 어린시절에 길을 잃고 부모와 생이별하여 평생 고아처럼 고독하게 살다가 천만다행으로 부모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단지 이 땅에서 소설이나 영화, TV드라마로만 여기지 않고 까마득한 옛날 천사세계의 본향 소식으로 옛추억을 더듬으며 성경에서 그 근본이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분명 천복을 받을 행운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14:18) 고아의 종류를 살펴보면 전쟁고아, 에이즈 고아, 미아고아 등이 있다. 전쟁고아는 전쟁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를 뜻하고 에이즈 고아는 부모 중 한쪽, 또는 양쪽이 에이즈로 사망하여 고아가 된 어린이를 뜻한다. 유엔 에이즈계획(UNAIDS),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15세가 되기 전 어머니가 에이즈로 사망한 어린이에게 이 용어가 쓰이며, 아버지의 생존여부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에이즈 고아는 해마다 70,000명씩 늘어나고 있으며, 2010년까지 2천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에이즈로 인해 부모를 잃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아고아는 부모를 길에서 잃어버려 미아가 된 아이들이 어느 고아원에 있다가 여기 저기 보내져 결국엔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TV에 자주 나오기도 한다. 이 경우 미아가 된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평생 잊혀지지 않고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로 남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68년 목포의 외가에 갔다가 길을 잃어 미아가 된 후 고아로 살아온 전모(42.전남 화순)씨는 지난 10월 24일 전남 화순경찰서의 도움으로 일가족 5명을 모두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연합뉴스 2000-12-24) 이러한 사례를 보아 미아에서 자칫 고아가 되는 일이 극소수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3~16) 아름다운 천사세계에는 근본 눈물, 슬픔, 사망, 고통이 없고 고아도 외국인도 없는 곳인데 왜 이런 사람들을 데리러 지구 도피성까지 친히 오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을까? 비유 속에는 창세 때부터 감추어진 천국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과연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 비밀은 결국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초림3년과 재림 37년의 다윗왕위 40년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지 않고는 결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 우리 인생들은 하늘나라에서 무슨 사연과 무슨 죄 때문에 기억도 없이 이 지구 도피성까지 와서 고아처럼 살아야 할까? 비록 부모가 있어도 찾지 않으면 고아와 다를 바 없고 하늘 아버지는 겨우 찾았어도 긴가 민가 하면서 아직도 영의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면 이 또한 영적 고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미없는 병아리와 어머니 없는 자식만 불쌍한 것이 아니라 하늘 어머니 존재 조차도 기억못하는 자녀가 천국에 돌아갈 생각인들 하겠으며 나온 바 하늘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도 있을까?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노래만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 본향을 생각하며 하늘 어머니도 그리워하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기도한다면 분명코 길은 열릴 것으로 믿는다. 어머니! 불효자식 이 못난 자녀들을 용서 하소서, 입술이 둔하여 불쌍한 영혼들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이 소자를 용서하소서!
하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진리를 가지고 오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안증회/어머니하나님/총회장김주철목사)는 자녀를 향한 어머니하나님의 간절하신 사랑을 전합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어머니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교회(안증회/어머니하나님/총회장김주철목사)가 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행복한 이유입니다. 하늘 영광을 뒤로 하시고 죄악의 땅까지 친히 오신 안상홍님과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여 우리 본향, 하늘 나라로 돌아갑시다.(^.~)
‘죽었던 사람이 돌아와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우리 가족은 분명 회개를 할 것이다. 가족이라도 이 고통을 피해갈 수 있다면!’
부자는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청을 드렸다.
“아버지여, 그 곁에 있는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의 간청에 안타까운 듯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눅 16:19~31) 흔히들, 죽었던 지인이 살아나서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알린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믿지 않으면, 아무리 죽었던 자가 살아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하셨다. 혹 죽었던 자가 살아나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자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알린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신반의하거나,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또한 갖가지 의학적인 용어를 붙여 환상과 같은 것을 봤다고 진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증언보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구원자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모세와 선지자의 글, 성경을 보는 것이라고 일축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외의 다른 책으로는 절대 구원자도, 천국과 지옥도 알 수 없다.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자를 만나야만 부자와 같이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2~14)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엄청 불만스럽고 불편한 진실이 담긴 이 비유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은 결코 아니다. 원래 임금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았던 기득권층 사람들은 결국 전부 무자격자로 실격처리된 후에 마지막으로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다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는 임금의 엄중한 명령에 따라 종들은 신분, 성품, 예복 같은 것은 따지지 않고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하객이 가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혼인잔치 자리가 어떤 자리던가? 상식적으로 한국의 청와대에도, 영국의 버킹검 궁전에도, 미국의 백악관에도 아무나 함부로 초대하지 않는 것이어늘 하물며 천국은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천국의 혼인잔치 하객으로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 감히 예복도 입지 않은 문제아가 섞여있을 정도면 이것은 분명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객들의 의식수준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부의 존재와 등장시기를 미리 거론해 본들 관심 밖이고 시기상조일 것 같기도 하다. 성경도 믿지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신부가 있다 없다", 혹은 "나도 신부고 너도 신부다, 우리 모두가 다 신부다"라고 말장난하는 사람도 있는데 부디 청함받은 다수의 하객 입장에서 과감히 벗어나 진정 예복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아서 꼭 택함을 입는 소수의 은총과 은혜를 덧입기를 바랄 뿐이다.
하객으로 가득찬 혼인잔치에 예복도 입지 않고 들어온 한 사람이 임금의 눈에 심히 거슬리게 되어서 그냥 강제추방 정도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수족을 결박당하고 무서운 처벌까지 받게 되니 바보처럼 아무 생각없이 영문도 모르고 무조건 남들 따라 들어온 하객으로서는 얼마나 억울했으면 슬피 울면서 이를 갈기까지 했을까? 수면 중에 잠꼬대하면서 이를 가는 버릇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본문에서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던짐을 당하는 것은 지옥을 의미하는데 오죽하면 수족이 잘리는 육신의 고통이 있더라도 지옥고통만은 당하지 말도록 권고하셨을까? 예복을 입지 않았던 그 하객은 차라리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차라리 가룟 유다처럼 태어나지 말거나 제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스승을 배신하지도 않았을 것을···. 차라리 기성교단의 오만과 교만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온갖 불법과 비리에 중독되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새 언약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들을 그렇게 까지는 비방하거나 핍박하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우리목사님과 등졌더라면 성경말씀대로 쉽게 돌아올 수 있었을 터인데···. 같은 제자로서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통곡하며 진정한 회개를 하고 수많은 사람까지도 회개시켜 구원의 길로 인도했고 다른 한 사람은 후회만 하다가 결국 자살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사악했던 좌편강도와 회개했던 우편강도는 둘 다 같은 강도였지만 진실된 회개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어찌 지나간 옛이야기로만 치부할 것인가?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고 강 건너 불구경일까? 이런 모든 일들이 내 발등의 불이 되지는 않을런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엘로힘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