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오해의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하셨다.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보고 듣고 읽기는 하지만, 실상 성경의 진리를 잘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잘 알지 못한 것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뜻도 잘 모르는데 좁은 문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마 7:21) 주여 삼창까지 하면서 주여 주여만 외친다고 천국문이 자동문처럼 저절로 열릴까?
오병이어의 엄청난 기적을 목격하고서도 5,000명쯤 되는 군중들이 다 떠나가버린 기막힌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도 가려느냐?"(요6:67)는 말씀이셨다. 생계형신앙, 기복신앙, 가정평화와 건강축복을 기원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신앙의 근본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닌가. 영혼 구원이 빠져버린 신앙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가 되어 시간, 물질, 정성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8)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6)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약속의 자녀에게만 허락된 천국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어머니로 말미암아 영생얻고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 구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어머니께 달려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어머니로 말미암아 하늘 유업을 받는 약속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각종 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나라가 물에 잠겨 가옥과 토지를 잃고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고 해마다 강도가 더해지는 지진으로 인해 언제 삶의 터전을 잃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한 각종 바이러스와 새로운 변종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해 심각한 질병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물부족과 자원의 고갈로 인한 국가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눅 21:10). 사람들의 심리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이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유 없는 살인, 방화를 저지르고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과 이기심, 성적인 문란으로 인한 사회범죄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가족도 안중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딤후 3:1~3.) 우리의 삶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의 한가운데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지진, 기아, 질병… 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당신은 과연 안전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인류를 향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인(印)'을 맞으라고 증거하고 있다. 계 7:2~3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印)'을 맞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印)'은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약속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印)'은 과연 무엇인가?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바로 ‘하나님의 인(印)’이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라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요 6:53~54). 그리고 유월절에 먹는 떡과 포도주에 당신의 살과 피를 약속하시며 새 언약을 세워주셨다. 눅 22:7, 20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월절(逾越節)은 영어로 'Passover'로 '재앙이 넘어간다'는 뜻이다. 구약 출애굽 당시에도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를 멸하는 재앙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출 12:1~13).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재앙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으로 보여주시며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에게 "재앙을 넘겨주겠다"고 동일한 약속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집을 계약할 때나 자동차를 살 때 등 중요한 계약을 할 때는 모든 문서에 도장을 찍는다. '내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약속의 증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印)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시겠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逾越節)을 당신의 인(印)으로 삼으시고 지키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보증하셨다. 그리고 어떠한 재앙 가운데서도 지켜 보호하실 것을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시 91:1~7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온 25명의 사람 중 한 명은 소시오패스다. 전 세계 인구 가운데 무려 4%가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소시오패스는사이코패스와 같은 인격장애에 속하나, 자기 감정에 미숙하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와 달리, 감정조절이 뛰어나며 타인의 감정을 잘 이용한다. 가령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면 거짓으로 후회, 반성을 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순진함을 강조하는 식이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거짓말이며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사이코패스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는 것에 반해, 평범한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면서 계산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다. 사이코패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소시오패스가 우리 삶 곳곳에 숨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소시오패스가 교회 내로 들어온 지는 오래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한복음 8장 44절)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서 1장 15~16절) 이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알려주신 진리는 버리고 사람이 만든 계명을 지킨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성경에도 없는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믿는 길이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예수님께서 지키길 원하고 원하였다고 하신 새 언약 유월절과 안식일은 깡그리 무시하고 말이다(누가복음 22장 15~20절).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복음은안식일과 새 언약유월절 및 3차의 7개 절기다.그 외에는 다른 복음인 것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천국이 아닌 저주받는 지옥으로 인도하면서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길이라며 웃는 자들이 소시오패스가 아니겠는가.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린도후서 11장 13~14절)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인 양 가장하는 영적 소시오패스. 이들을 구분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행위’가 누구의 복음을 따르는가이다. 성경에도 있지 않은 일요일 예배나 추수감사절 등이 하나님의 절기라며 거짓말하는 자들은 사단의 일꾼이요, 영적 소시오패스다. 더 이상 이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자.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지 않는가.
군대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려내기 위한 방법으로 '암구호'를 사용한다. 암구호란 아군 사이에 미리 정해놓은 문답식의 비밀단어다. 수하자(암호를 확인하는 사람)가 사용하는 문어(問語)와 상대방에서 사용하는 응답어로 구성되는데 주로 상대편의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울 때 미리 약속한 암호로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날의 암구호가 ‘산’과 ‘바다’일 경우, 수하자가 ‘산’이라고 하면 상대가 ‘바다’라고 대답해야 아군으로 인식한다. 틀릴 경우 적군으로 판별한다. 하나님께서도 자녀를 판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암구호를 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사 52:6)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알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아버지의 이름, 아들의 이름, 성령의 이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로 나누시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주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암구호가 세 개인 것이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 43: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행 4:11) 성부시대 ‘여호와’라는 암구호를 알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욜 2:32), 성자시대 ‘예수’라는 암구호를 알았던 제자들이 구원을 받았던 역사(롬 10:9~13)는, 성령시대 역시 ‘새 이름’이라는 암구호를 알아야만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17) 새 이름,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판별하는 새로운 암구호다.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성령의 이름. 하나님께서 '나의 새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때 당신은 무엇이라 응답하겠는가.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요한계시록13:4~6)
용은 요한계시록 12:9을 보시면 마귀(사단)임을 알수 있습니다. 즉, 마귀가 하나님에 대해서 대적하고 훼방하려 할 때 가장 귀중한 부분을 방해하지 않겠습니까? 짐승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다는 예언은 그 만큼 그 이름이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의 예언을 따라 오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증거할 때마다 사단의 영에 미혹된 자들은 초림 때나 지금이나 항상 "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라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의 성호를 훼방하려 합니다.
오직하나님의 이름만이 우리에게 하늘 영적 세계에서 저질렀던 모든 죄사함을 얻게 하고, 그 이름에 의지해서 구원의 길로 나오게 하며, 그 이름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새이름은 바로 안상홍님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 66권의 예언을 모두 이루신 재림그리스도이시며 인류를 구원하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새이름 안상홍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50년 이후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의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히려 주춤하거나 후퇴했다. 지난 60년간 급성장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OECD 34개국 중 32위다. 거의 꼴찌나 다름없다.
더 많은 것을 가졌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국내 한 일간지에서 다룬 ‘행복의 조건 설문 2’라는 제하의 기사는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국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누구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 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1순위가 ‘가족’이었다는 것이다(친구 14.6%, 혼자 있을 때 12.6%, 항상 행복하다 6.9%, 취미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4.7%, 항상 행복하지 않다 3.8%, 직장에서 일할 때 1.7%). 다시 말해 행복의 원천은 물질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편하고 가장 아끼는 ‘가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가족이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다.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어머니’가 계신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최고조의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편부 가정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는 가정이 더 안정되고 완전해 보이고 더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혼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계 21:1~4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 영혼이 장차 돌아갈 천국은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행복만이 가득한 곳이다. 이렇듯 완전한 나라에 어머니 하나님이 부재한 상태라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어머니’를 두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은가. 그리고 왜 굳이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는가.
아무리 곱씹어봐도 어머니 하나님이 부재한 천국은 불완전해 보인다. 완전한 행복의 원천은 가족 중에서도 단연 ‘어머니’다.
모든 생명체가 모체를 통해 육적 생명을 얻듯,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반드시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을 온전히 마음 가운데 영접하고 믿는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신앙생활에 열심을 낸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을 얻지 못할 헛된 믿음일 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 진정한 행복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아담의 큰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이유인즉 아벨의 제사만 하나님께서 열납하셨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왜 그의 제사는 인정하지 않으셨을까.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2:3-5] 창세기에 기록된 예배(제사)의 시작이다. 아벨은 자신이 기른 양으로 예배를 드렸고, 가인도 자신이 일군 농산물로 예배를 드렸다. 모두 하나님을 향한 정성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의 피를 흘려 제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벨의 제사를 가리켜 성경은 믿음으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해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 아벨의 제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드려지는 예배가 믿음으로 드린 예배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예배인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는 안식일 예배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행하심으로 그 뜻을 확고히 하셨다(눅 4:16). 제자들도 말씀에 따라 새 언약의 안식일 예배를 행했다(행 17:2).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만든 일요일 예배를 지킨다면 자신의 생각대로 농산물로 드렸던 가인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예배는 악을 행하는 것이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일 3:12]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느 13:17] 지금 당신은 어떠한 제사를 드리고 있는가? 가인의 제사인가, 아벨의 제사인가.
성경을 두고 사실이냐 진실이냐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성경은 사실과 진실을 넘어, 진리다. 성경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1,600년간 40명의 기자를 통해 기록됐으며 그 안에는 2,930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1,551개의 지명과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담고 있다. 이런 장대한 기록을 두고 사실인가, 진실인가를 논하려니 사람들마다 갖은 학식과 논리가 뒤엉켜 오히려 궤변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어느 학설이 맞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성경이 사실이냐, 진실이냐를 판단하기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어떤 사람은 ‘사실과 진실의 교집합이 진실’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은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한 채 보이는 내용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안에는 참과 거짓이 공존한다. 그 중 참된 사실을 일컬어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넘어졌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이 왜 넘어졌는지, 또는 정말 넘어진 것인지를 알 수 없다. 여기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사람이 넘어진 진실을 알 수 있다. 길을 가던 사람은 빈혈이 있었고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 쓰러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길을 가다 넘어졌다’는 사실은 이제 거짓이고 진실은 ‘사람이 길을 가다 현기증으로 쓰러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 사실과 진실의 차이다. 성경도 이와 같다. 성경의 사실여부만을 묻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근거와 과학적 근거 등 다양한 증거를 들어 사실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거짓이 없고 오직 참만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성경은 진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진실’이라고만 하기에는 섭섭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진실은 사람들이 인정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진실이 되기도 하고 다시 사실로 추락해 의심의 고리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이 인정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는 영혼이 사라질 수는 없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는 천국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참된 이치가 성경이다. 그러기에진리인성경은 만고불변이며이런진리는 지식처럼 습득하거나 알아가는 것이 아닌 찾고 깨달아 믿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바꿔 말하면 모든 것에는 기한이 있다는 의미다. 무언가를 심었다면 거둘 때가 있고, 견고하게 지은 건축물이라도 무너질 때가 있다. 사람의 인생은 어떤가. 사람이 태어나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되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행복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날 때가 있다. 이러한 진리를 성경은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장 1~8절)
‘기한’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자면 식품의 신선도를 나타내는 ‘유통기한’을 예로 들 수 있다. 식품을 구입할 때 ‘유통기한’이 지나면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을 하고 구입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도 ‘기한’이라는 것이 있다.
생각해 보라.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구원자로서 역사하셔도 될 텐데, 왜 성자 예수님께서 등장하셨겠는가. ‘오직 여호와’만을 구원자로 부르짖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 예언대로 구원자로 오셨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 11절)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사도 바울은 지금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분명 구약성경에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사 43:11)’는 말씀을 주셨는데 말이다. 율법에 능한 바울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기한’에 있다. 바울의 말은 성자시대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며 이 시대에 다른 이름을 구원자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시대 구원자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예수님은 성자시대 구원자다. 성부시대의 기한이 마쳐지고 성자시대로 넘어오면서 구원자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성자시대에는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자의 이름에 기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 16:24)” 하셨던 것이다.
이제 성부시대, 성자시대의 기한은 끝났다. 지금 우리는 성령시대의 기한 속에 살고 있다.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을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수’라는 이름이겠는가. ‘예수’는 성자시대 구원자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성령시대에는 더 이상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성자시대의 기한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예수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12절)
아직도 성령시대 구원자인 예수님의 새 이름, 안상홍님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성자시대 구원자인 예수님만을 부르짖는가. 2천 년 전 유대인도 그러했다.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성부시대 구원자인 여호와만을 부르짖다 멸망을 당했다. 시대를 알아야 구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는 미국, 영국, 스리랑카 등 수많은 외국 대사관이 주재하고 있다. 해당 국가에서 파견된 대사 및 영사는 주재한 국가와의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자국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비자 발급 업무다.
만약 미국에 거주하길 원하는 한국인이 있다면, 대사는 그가 미국에서 살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고 적합할 경우 비자를 발급해준다. 이같이 각 나라의 대사관의 심사를 통해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합법적으로 해당 국가에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혹 천국 대사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곳곳에 천국 대사관을 세우시고 천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이라는 천국 비자를 발급하고 계신다. 천국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만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 비자를 발급해주는 곳은 어디일까.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온이다.누구든지 천국에 살기를 원한다면 영생이란 천국 비자가 있는 시온을 찾아야 한다. 천국 비자는 어떻게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 26:19, 26~28)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에게 영생을 줄 것이며, 그 방법이 유월절이라고 알려주셨다. 다시 말해 유월절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은 자가 천국 비자를 발급받는다는 의미다.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천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유월절을 지키는 시온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율법 곧 절차를 행했는지 여부를 놓고 온 인류를 심판하신다고 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선 죄 사함이 약속된 유월절 지키는 시온을 찾아야만 한다. 전 세계에서 예수님의 뜻대로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목사)뿐이다. 천국 거주를 희망하는가. 그렇다면 천국 대사관인 하나님의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를 찾자.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켜 천국 비자를 발급받자.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필자는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 이유는 성경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얼마 전 한 기독교 잡지에서 신학대 교수가 구약 성경을 통해서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겠다고 쓴 글을 봤다. 글쓴이는 성경에 ‘어린양의 아내’, ‘신부’, ‘새 예루살렘’은 어머니 하나님이 아닌 교회(성도)라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모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그러니 이런 비성경적인 주장을 펼쳤으리라. 글쓴이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어린양의 아내는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계 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천국 혼인 잔치에 대한 비유다. 혼인 잔치에는 신랑인 어린양과 신부인 어린양의 아내 그리고 하객인 청함을 입은 자들이 등장한다. 신랑인 어린양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아버지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아내와 청함은 입은 자들은 누굴까?
‘청함’을 입은 손님들이라고 했으므로 당연히 신랑과 신부는 아니다. 신부가 성도라면 ‘청함을 입은 자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들이 바로 영생의 축복을 받을 성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아내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내 곧 어머니 하나님이다.
2. 신부는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어불성설이다.
신부가 어머니 하나님이 아닌 성도라고 한다면 성도가 생명수(영생)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생명수를 받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성경에서 생명수를 주시는 분은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뿐이다. 성부시대에는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시대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생명수를 주셨다. 그리고 성령시대인 오늘날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시기로 예언되어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셨고(계 21:6), 이어지는 22장에서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셨다. 성령과 신부는 하나님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란 말이다.
3.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는 말씀처럼 신부로 비유된 것뿐이지 신부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더 읽어보자. 같은 장 9절을 보면 요한이 신부 같다고 추측한 분이 누구신지 천사가 정확하게 알려준다. 신부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비유가 아니다. 증거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자.
계 21:9~10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사도 바울은 요한이 본 하늘 예루살렘이 바로 우리 어머니라고 증거했다.
갈 4:26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기서 ‘우리’는 바로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로부터 생명수를 받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들에게는 누가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는가. 어머니 하나님이다. 이처럼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분명,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증거한다. 그리고 그 어머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사람이 되어 오셨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하나님은 초월자라고 찬양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말도 믿어야 한다. 전지전능한 분이 아닌가. 글쓴이는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가 하나님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제한한다고 비난했다. 대단히 오해했다.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는 하나님을 인간적인 모습에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든 영이든 어떤 모습으로도 계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
필자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닌 신일 뿐’이므로 영으로만 존재해야 하고 육체로는 계실 수 없다는 글쓴이의 주장을 보고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이게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제한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초월자라고 찬양하면서도 ‘사람으로는 올 수없다’는 모순된 거짓말에 속고 있다. 절대 속지 말자.
5분마다 1명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되고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최근 통계다. 이는 매년 10만 5000명의 기독교인이 종교분쟁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참사는 기독교인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제인권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이슬람교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매년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띌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으로 전 세계가 피멍이 들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종교 증오성 범죄. 무엇이 이들의 증오심을 키우는 것일까, 무엇이 이들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것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의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타 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증오심을 심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에 따른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무슬림의 순진함’이란 영화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슬람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유혈 충돌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 영화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내용으로, 미국인 나쿨라 바슬리에 의해 제작됐다. 러시아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은 이 영화가 종교적 증오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수입과 배포를 금지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로 인한 인명피해다. 해당 영화가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배포된 만큼 피해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영화를 본 이슬람교인들이 분노가 무력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 것이다. 수단에 있는 영국과 독일 대사관이 습격을 당했으며, 리비아에서도 미국 영사관이 습격 당해 대사관이 피살됐다. 레바논, 나이지리아, 모로코, 이집트, 이란, 쿠웨이트 등에서도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충돌,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던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이,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전 세계를 하나로 묶은 인터넷 문명이, 타 종교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분열을 맞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쉽게 습득하는 이로움도 있지만 인터넷을 악용하여 사실무근한 내용과 악성비방글을 올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해로움 또한 많은 게 현실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거도 없는 내용으로 비방과 비판하는 인터넷문화들, 살인의 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가장 큰 비밀은 암행시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사람되어 이땅에 오셨듯 마지막 이 시대에는 성령과 신부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 사람되어 두번째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이 모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는 성령과 신부이신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때에 암행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만 알고 영접하면 큰 복 받은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 계신 하나님의 교회(총회장 김주철목사)로 오세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후기 문장가였던 유한준(1732~1811) 선생이 남긴 글이다. 최근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에 인용하면서 세인들의 마음에 명언으로 새겨졌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가령 꽃을 사랑하면 꽃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듯,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기성교인들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아무리 성경을 열 번, 백번 통독하며 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성경을 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장 6절)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성경의 예언을 볼 수 있으며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유한준 선생의 글처럼 사랑하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자.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누군지 말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장 12절)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믿게 되나니, 그때 믿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마태복음 16장 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고기잡이 출신인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허락해주셨다. 수많은 제자 중에서 베드로를 선택해 천국 열쇠를 맡기신 이유는 무엇일까. [마태복음 16장 13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당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수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다. 그는 예수님을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고 따랐던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의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했다. 그 결과 엄청난 축복이 담겨 있는 천국 열쇠를 받았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를 닮고자 한다. 그의 믿음을 닮게 되면 자신들도 베드로와 같이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구원자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입으로만 시인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었기 때문에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나타나시리라 마지막 시대 예수님께서 2천 년 전과 동일한사람의 모습으로 두 번째 오셨다. 무화과나무의 예언과 멜기세덱의 예언, 다윗의 예언 등 성경의 모든 예언을 따라 이 시대 구원자가 오신 것이다(패스티브닷컴 ‘재림 예수님은 이미 오셨다’, ‘다윗의 뿌리, 안상홍님’, ‘멜기세덱, 예수님 그리고 안상홍님’ 참조). 그분이 바로 안상홍님이시다. 입으로만 사람으로 오신 구원자를 믿었던 자들은 결코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베드로와 같이 마음으로 믿었던 자들은 안상홍님을 이 시대 재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를 수 있다. 천국 열쇠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베드로와 같이 사람으로 이 시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라.성경이 그 구원자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 증거를 받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만약 이 말씀을 모르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혹시 초신자이거나 설교시간에 상습적으로 졸거나 나이롱신자로 딴생각에 젖어서 억지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주교나 한기총 소속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단체의 수많은 신도들은 서로 이단과 사이비를 혐오하고 기피하는 현실 속에서 자칭 "나는 이단교회에 다닙니다, 나는 이단교회가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속교단이 이단인지 아닌지 혹시 교파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의 교단이나 교파를 따져 물어보고 이단색깔이 보이면 상대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목사들로부터 이단경계령을 통보받고 이단색출, 이단척결 등 영적 도둑떼가 오히려 더 난리법석을 떠는 현실이다. 십중팔구 나름대로는 아버지 뜻대로 살고 있거나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고 있고 구원도 받고 축복도 받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구원이 목적이 아닌 사람도 더러 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장난 치고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사각지대가 휴전선 DMZ보다 더 심각하게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교단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더러 "주님 주님 우리는 교단이 뭡니까?", "우리는 교파가 어떻게 됩니까?", "누가 우리 교단이나 교파를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주님은 뭐라고 대답할까? "도대체 장로교나 감리교나 천주교나 성결교 이런 것을 언제부터 누가 왜 만든 것입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진리를 모르니까 교단이나 따지고 교파가 갈라지고 콩가루집안이 되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무슨 교단이었고 바울은 무슨 교파였을까요? 이것이 과연 질문 가치라도 있단 말입니까? 여기에 꼭 대답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이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입니까?" 한때 말도 안되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하나님의교회(김주철목사님)는 지상 최고의 진리, 새언약 진리를 지키며 영생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거다! 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렘 10:2~5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살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공동번역: 허수아비)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우상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섬기는 자들은 결국 어떻게 될까? 렘 2:27~28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니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십자가를 비롯해 어떤 우상도 숭배하지 말아야 하겠다.
무너졌다. 침몰하지 않는 배, 일명 불침선(不沈船)이라고 불릴 정도로 견고함을 자랑하던 배가 무너지고 말았다. “신도 이 배를 침몰 시킬 수 없다(God himself Could not sink this ship)”는 문구를 광고에 낼 만큼 사람들의 신뢰 또한 깊었다. 그러나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바로 타이타닉호다. 비극적인 배로 기억되는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0일 2200여 명의 승객 중 1500명의 사상자를 내며 깊은 바다로 사라졌다. 이 일은 지나간 역사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경고로 다가오고 있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계 18:16-19) 무너졌다.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보배로운 상품을 소지하던 견고한 성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그 성의 상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멀리서 불타는 성을 바라보며 “이 큰 성과 같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며 애통해 한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견고한 성이 무너진 것인가. 그리고 그곳은 또 어디인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귀신의 처소이자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 그래서 심판이 예정된 그곳은 영적 바벨론, 즉 거짓 교회다. 사람의 영혼을 멸망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노를 사 결국 무너진 것이다(계 18:13). 그곳을 분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을 행하는 교회가 거짓 교회요, 무너질 큰 성 바벨론이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 22:15) (예수께서)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눅 6:5) 유월절과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버릴 수 없는 진리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안식일은 폐지되었다며 일요일 예배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절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거짓 교회 바벨론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구원을 확신할 만큼 그곳에 대한 신뢰 또한 깊다. 마치 “신도 이 배를 침몰 시킬 수 없다”며 타이타닉을 맹신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바벨론은 결국 무너진다.
하나님의 교회(안증회,김주철목사님) 175만 성도는, 성경 66권의 예언에 따라 오신 안상홍님을 재림 예수님으로 믿는다.그러나 성경의 예언을 올바르게 믿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 어디에 안상홍님이 재림 예수님이라고 예언되어 있느냐, 안상홍님이라는 이름을 성경에서 찾으면 믿겠다고 억지주장을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2천년 전 사도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할 수 없다. 당시 성경은 (오늘날 말하는)구약성경뿐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어디에도 구원자의 이름을 ‘예수’라고 기록한 부분은 없다. 오직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뿐이었다(사 43:11). 그렇다면 사도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겠는가.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구원자를 증거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도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구원자에 대한 증거를 그대로 성취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수 있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사 7:14 그러므로 주께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하라 사 35:4~6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렘 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예수’라는 이름은 없지만,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증거는 구약성경 곳곳에 있다. 이를 증거로 예수님께서 구원자임을 알리는 사도들의 목소리를, 신약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눅 1:31, 마 1:18~25, 마 11:2~6, 눅 22:20). 이 시대 구원자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도 동일하다. 안상홍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한 예언과 다윗왕에 대한 예언, 멜기세덱에 대한 예언 등을 성취하신 구원자시다. 이를 증거로 하나님의 교회(안증회,김주철목사님) 성도들은 안상홍님을 구원자로 믿으며, 그 이름을 증거하고 있다(패스티브닷컴 ‘다윗의 뿌리, 안상홍님’, ‘멜기세덱, 예수님 그리고 안상홍님', ‘다윗과 영원한 언약’ 참조). 아직도 성경에서 ‘안상홍’님이라는 이름을 찾으라고 억지를 부릴 것인가. 유대인도 그러다가 멸망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